공익갤러리 공인 근무지 티어
['폐급']
'노인복지시설'
선관위 공익 썰이 있길래 뇌절 아니라고 믿고 나도 한 번 써본다. 의식의 흐름대로 썼으니 그냥 좀 모자란 놈이 썼구나 하고 읽어줬으면 좋겠다.
한 때 내 별명은 피들스틱이었는데 손목에 500원을 놓고 광각 카메라로 찍으면 손목이 거의 다 사라졌다. 이 저주받은 스켈레톤 체형 덕분에 공익이 되었다. 근무지를 고르다가 '노인복지관'이 경쟁자가 제일 적길래 오 개꿀~하고 신청했다. 그 전까지 난 몰랐다. 왜 경쟁자가 적은지 말이다. 그냥 빡쎄니까 공익들이 안 가서 경쟁자가 적은 거였다. 하여튼 나는 지옥이라는 노인복지기관에 근무하는 공익이 되었다.
노인 복지가 얼마나 힘든지 딱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정신질환 공익이 못 간다' 라는 것. 예전에 정신공익이 노인복지 갔다가 노인 폭행, 칼부림이 난 적이 자주 있어서 아예 제도적으로 금지해버렸다 (아동기관도 마찬가지)
또 노인복지시설은 공익들이 안 가려고 해서 자리가 항상 남는다. 그래서 만약 다른 근무지에서 난동피워서 '근무지 이동'되면 노인복지기관으로 유배 됨. 사실 노인복지가 전부 지옥은 아니다. 지옥이 육도마냥 단계가 나뉜 것처럼 노인복지도 단계가 나뉜다.
SSS급 - 사설 노인요양원
SS급 - 종교 노인요양원 , 요양병원
S급 - 노인보호소
SSS급인 사설 노인요양원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 악마들이 산송장을 관리하는 지옥이라고 볼 수 있는데 불법적인 일이 매일매일 일어난다. 유통기한이 지난 간식, 통제를 위한 폭력, 정부보조금 비리 등등 내가 늙으면 적어도 사설 노인요양원은 절대 가고 싶지 않다. 보통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험악한 이야기들의 본산지는 저 SSS급이다. 너희들도 주변 사람이 부모님 저기 보내겠다고 하면 말려라. 불효자들만 보내는 곳임. SS급인 종교 노인요양원은 그나마 낫다. 일단 정부 지원금 + 기부금 + 봉사단체 + 소속 종교에서 주는 돈 등등 자금이 많다보니까 여유가 있다. 대신 똥 받이, 오줌 받이, 죽 먹이기, 목욕 해야되서 힘들다. 사실 얘네가 진짜 헬이다. 나는 S급인 노인보호소에 들어갔다
아마 개드리퍼들은 내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이 글을 클릭한 것일테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노인보호소에서 잘 지내다가 왔다. 정말 운이 좋게도 너무 착한 사람들과 꿀무지를 만난 것이다. 그래서 치매에 걸린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그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하고 싶다. 우리 근무지에는 중증 치매에 걸린 헬창급 몸 가진 할아버지가 있었다. 중증 치매라는 것은 통제가 되지 않는 치매를 뜻한다. 거기에 더해 엄청난 완력까지 가진다면? 마동석이 말년에 치매가 왔다고 생각해보자. 음....
치매 어르신들에겐 어떤 특정 루틴이 있다. 예를 들어 어르신을 어딘가로 모셔야하는데 안 가고 버틴다고 해보자. "집에 빨리 가서 저녁밥 해주셔야죠" 라고 말하면 그제서야 "아 맞다 저녁밥!" 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움직이는 사이에 그 사실을 다시 까먹는다. 이렇듯 치매 어르신들에게는 각자 통제 루틴이 다르다. 하지만 그 중증 치매인 할아버지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이러한 방법을 쓸수 없었다. 그래도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해결책을 찾긴 했다. 그 할아버지는 모자에 대한 엄청난 집착이 있어서 쓰고 있는 모자를 뺏어가면 욕을 하면서 따라왔다. 그 방법을 통해 화장실도 보내고, 교실로 이동도 시켰다.
문제는 집에 도착 했을 때였다. 주간노인보호센터는 오후 6시 까지만 어르신을 보호해준다. 그래서 6시에 집으로 차를 태워 내려준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집에 도착해서는 차에서 내리질 않았다. 여러가지 방법을 써봤지만 차에서 내리게 하는 어떤 루틴도 먹히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완력을 통해 세 사람이 달라붙어 내리게 만들었다. 뒤에서 밀고, 앞에서 당기고, 옆에서는 모자를 통해 교란시켰다. 그 모자를 잡으려다 운전자 머리채를 잡고서 흔드는 경우도 있었고 발로 배를 맞은 적도 있었다. 사실 내가 다닌 주간노인보호센터는 사실 그러한 중증치매 환자를 받을 수 없다. 다시말해 경증치매를 가진 환자만 받을 수 있었다. 법률상으로 그런 '중증' 치매인 어르신은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원래 그 정도의 중증 치매 환자는 '요양병원'으로 가야한댄다. 그렇다면 왜 중증 치매 환자를 받은 거냐고 물어봤더니 어르신이 차에서 전부 내렸을 때 내게 사연을 들려주었다.
자녀들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외면해서 할머니 혼자서 어쩔수없이 그 치매 할아버지를 돌본다고 했다. 할머니는 수중에 돈이 없었고, 값비싼 요양병원은 턱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사정 때문에 주간노인보호센터에서 그 할아버지를 맡게 된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그 할머니도 경증 치매가 진행중이었다)
덧붙여 그런 치매 환자들이 현재 이 근무지에 많다고 했다. 법적으로 중증 치매 판정을 받은 어르신들 말이다. 다들 저 할아버지처럼, 다시말해 돈이 없어서, 요양병원에 보내지 못하는 보호자들이 많았다. 그런 보호자들이 딱해 지금까지 봐주었던 것이었다. 덧붙여 공익 애들에게도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 안 해도 되는 일을 맡게 된 것이라며 말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는 그 할아버지가 딱하게 보였다. 그 이전까지는 그냥 말 안 듣는 할아버지로만 보였는데 말이다.
근무지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다. 50세에 치매가 걸린 대기업 부사장도 있었고 거대한 극장을 운영했던 할머니도 있었으며 6.25 참전 용사도 있었다. 6.25 참전 용사인 할아버지는 PTSD가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차에서 항상 고개를 차 아래로 파묻고 있었는데 왜 그러냐고 묻자 소름끼치는 말이 돌아왔다.
'총알'
할아버지의 상상 속에서는 총알이 머리 위로 빗발치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교실에서도 의자에 앉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땐 '의자 아래 폭탄이 있다'며 계속 일어서있었다. 영화로만 보던 PTSD가 현실에서 보니 심각한거구나 라는게 와닿았다. 내가 다닌 '노인주간보호센터'는 크게 좋은 곳은 아니다. 더 시설이 좋고 비싼 '실버 병원' 같은 곳도 있다. 그곳에서는 24시간동안 간호사가 옆에서 건강을 체크하며 비싸고 질 좋은 수업과 서비스를 받는다. 우리 근무지는 그저 선생님들이 몸으로 떼우는 곳이다. 참전 용사가 있을만한 곳은 아니라는 소리다.
근무지에 이런 손이 많이 가는 어르신만 있는 건 아니다. 전체적인 업무는 조금 귀찮고 손이 갈 뿐이었지 힘들진 않았다. 보통 요양원 공익이 힘든 이유가 선생님들의 스트레스를 하급자인 공익이 다 받아줘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다행히 내가 근무한 곳은 선생님들끼리 서로 히스테리를 부리고 공익들은 불쌍한 아들래미 취급이었다. 공익 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근무지 복도 전체에 흙이 잔뜩 뿌려져 있어서 왠 흙이지? 했는데 널린게 흙이 아니라 전부 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때 토하는 줄 알았다. 선생님들은 사태 수습을 위해 먼저 어르신을 씻기느라 복도 청소는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원래 혐오스러운 업무는 공익을 시키면 안 된다. 그래서 공익들에게는 그냥 어르신들만 통제해달라고 했으나 한 선임이 나서서 복도를 청소했다. 난 그때 진심으로 감탄이 용솟음쳤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안 해도 되는 일을 열심히하지? 와! 맙소사! 공익일을 하면서 그때가 가장 놀랐다. 그리고 그 선임이 너무 불쌍했다. 왜 저 똥 닦는 일을 혼자 하는가. 그래서 그 뒤로 나도 따라 도왔다. 토 할 뻔해서 선임이 말렸는데 말리니까 오기 생겨서 더 하고 싶어짐. 지금 생각하면 호구같지만 그땐 선생님들이 잘 대해주셔서 보답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이 들 만큼 선생님들은 공익들을 잘 대해주셨다.
이런 더러운 일은 꽤 많이 일어났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일어났다. 바지에 오줌을 싸던지 똥을 싸던지 벽에 똥을 칠하던지 주머니에 똥을 넣던지 어르신들이 치매에 걸렸다고 부끄러움까지 까먹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자신이 바지에 똥을 쌌다는걸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한다. 치매에 걸려서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 뿐이지 다 감정도 남아있다.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잊어도 감정은 잊지 않는다. 바지 똥을 싼 일을 잊어도 선생님들이 자기때문에 힘들어하면 미안한 마음을 가졌고 또 부끄러워했다.
어느 한 할머니는 누워서 마사지 받을 때마다 울었다. 왜 우냐고 물어보면 항상 모른다고 말했다.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돌아가신 엄마 생각나서 운다고 했다. (예전에 정신이 멀쩡 했을 때 물어봐서 안 것이다) 그래도 막상 할머니에게 물어보면 엄마 이름도 모르고 자기가 6살이라고만 말한다. 또 중증 치매인 다른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 어르신은 자기가 치매 걸린 줄을 몰랐다. 항상 자기는 멀쩡하다고 믿었다. 어느날은 추석을 맞아서 자녀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다. 물론 글씨를 못 쓰니 내가 대신 써줬다. 처음에는 안부를 묻는 말을 써달라고 해서 그렇게 쓰다가 자기가 치매에 걸려서 미안하다고 써달라고 했다. 나는 잠깐 놀랐다. 이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걸 자각하지 못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 뒤 편지 내용은 '내가 치매에 걸려서 미안해.' 같은 말로 반복되었다. 그리고 편지를 품 안에 꽁꽁 숨겨놓고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겠다고 했다. 나한테도 비밀로 해달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부끄러워서 치매에 걸리지 않은 척 한건지 아니면 정신이 잠깐 돌아온건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글만 보면 매일매일이 슬프고 힘들 것 같지만 사실은 그런 경우는 적다. 선생님들이 긍정적으로 말하고 개그치면 할머니들은 곧 잘 웃으며 좋아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밝은 편이다. 치매 걸린 어르신들은 거동이 불편해서 집안 화장실에서 넘어져 자주 돌아가신다. 그런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다 어디 한 곳만 부러져도 금방 돌아가신다. 그렇게 근무지 잘 나오던 어르신이 갑자기 안 나오면 어르신들이 '왜 그 할머니는 안 나와?' 라고 물어본다. 그럼 선생님들은 '딸이랑 더 좋은 곳으로 이사갔데요' 이런다. 어르신들은 '아이고 딸이랑 좋겠네' 하고 잘됐다며 좋아하신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항상 죽는다는걸 잊고서 크게 슬퍼하시진 않는다. 어쩌면 슬픔마저 까먹은 걸수도 있지만 차라리 그게 낫다.
정말 힘든건 저기서 일 하는 공익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니다. 그 환자들의 보호자가 가장 힘들다. 그 보호자들의 고통은 정말 형용하는게 죄송할 정도로 힘들 것이다. 치매는 불치병이고 절대 낫지 않는다. 더 무서운 점은 사람이 죽기 전까지 점점 미쳐간다는 점이다. 정말 말도 안되는 끔찍한 병이다. 그런 치매 환자가 가족인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나는 그 마음을 진정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2년간 공익일을 하면서 느낀건 치매 환자들에 대한 복지가 간절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치매 환자 복지는 선진국에 비해 열악하다. 내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치매 환자에 관심 가져줬으면 좋겠다.
출처: https://www.dogdrip.net/232756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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